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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구문화관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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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이장군사당 VOD보기위치보기
남이장군사당 이 당은 용문동 106번지 언덕에 약 130여평의 대지에 4칸 정도의 전각형태의 건물이 있고 그 옆에 향나무, 은행나무등이 있습니다. 벽 중앙에는 남이장군 신상이 청용도를 들고 앉아 있고 그 옆에 부군신 내외, 최영장군 내외분이 있으며, 왼쪽부터 천신대감, 맹인내외, 호구아씨, 호구아씨 양위, 삼불제석, 호구아씨 신위, 별상내외, 별상님, 토주관장님, 산신령내외분, 그리고 선반 밑벽 정면에는 좌로부터 제장님 여섯, 말명 양위, 선생님의 신상이 결려 있으며, 이들 신상은 붉은색의 주렴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신상은 남이장군신으로 이 신상은 1935년에 안안동 개운사 고승 운백은 초빙해서 그렸다고 합니다. 제의 목적은 마을의 재액을 소멸하고 길복을 기원하는데 있습니다. 제일은 매년 음력 4월 1일, 7월 1일에 치제하는데 매 3년마다 4월 1일은 대규모의 당제를 지내고 이어 당굿을 합니다.

 

 
김유신장군사당 VOD보기위치보기
김유신장군사당 보광동 168번지 언덕위에 있는 당은 대지 182평에 3평 내외의 제당과 5평여 크기의 제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제당 안에는 15점의 신상이 있으며, 그 앞에 제단이 있습니다. 또 대문 옆에는 김유신장군 명화전(明化殿) 연혁비(沿革碑)가 있습니다. 당은 원래 강변에 있었으나 1941년 경원선(京元線) 철도가 개통되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겼으며, 신상은 김유신장군을 주신으로 모시고 있으며 그 밖에 산신 삼불제석등 모두 열다섯 분의 신상이 모셔져 있습니다.

김유신장군을 모시는 것은 옛날 고구려를 공격할 때 이 쪽의 물이 얕아서 배수의 진을 치고 전쟁을 하였는데 전쟁에 이긴 후 김유신장군이 동민들을 잘 돌보아 주었기 때문에 모셨다고 합니다. 제일은 음력 정월 초하루 아침 8시경에 유례식으로 간단하게 치제(致祭)한 후 집에서 차례를 모신 다음, 다시 모여 저녁때까지 굿을 벌입니다.
 

 

 
이태원 부군당 VOD보기위치보기
이태원 부군당 이 당은 이태원동 189번지 언덕에 위치해 있으며 귀목등 신목 속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곳 주민들은 대부분 부군당으로 부르나 현판은 부군묘라고 되어 있고 주민들일부도 부군묘라고 부릅니다. 당의 구조는 대지 약 500여평 정도의 단청전각입니다. 당 입구에는 이태원동부군묘 관리위원회라고 쓴 현판이 붙어 있습니다. 입구 왼쪽에는 화주청이 있는데 제물을 준비하는 곳입니다. 대문앞에는 비석이 세워져 있습니다.
당은 목재와 시멘트를 사용해서 20평 가까운 큰 규모로 이루어져 있으며 당 앞에는 30여평의 마당이 있고, 이곳에서 굿이 진행됩니다. 당의 유래는 단기 3952년으로 표기된 것으로 보면 서기 1629년(광해군 11년)에 해당됩니다. 이로 미루어 보면 이 당의 역사는 지금부터 약 370여년으로 추산됩니다. 일부 주민은 이 당의 역사가 천년정도 된다고도 합니다. 지금부터 약 60여년 전에는 당이 지금의 외인주택 삼거리에 있었으나 일제가 그곳에 훈련소를 설치함에따라 현재의 위치로 옮겼다고 합니다. 옮기기 전에는 약 5평 정도의 한옥이었으나 옮긴 후 한칸짜리 목조 건물로 유지해 오다가 1967년 개축하였습니다. 신상은 당내 모두 12점의 신상이 모셔져 있는데, 즉 부군님, 별상님, 대감님, 제석님, 호구님, 산신님, 장군님, 군웅님, 가망님, 기마장군님, 걸립님, 창부님 등입니다. 이중 부군님은 이곳 부군당의 주신으로 마을 수호신의 성격을 가지고 있으며 내외분의 좌상이 전면 중앙에 있습니다. 대부분 부군할아버지 부군할머니라고 호칭합니다. 부군상은 수염이 길고 태가 큰 흑립을 썼으며 할머니는 원삼 족두리에 큰 거울을 들고 있습니다. 별상님은 두신(痘神)으로, 당시 천연두를 두려워하여 별신으로 모셨는데 두손을 가운데로 모으고 의자에 앉아 있으며 좌우에 각각 한 사람씩 시녀가 서있습니다.

 

 
동빙고 부군당 VOD보기위치보기
동빙고 부군당 옛날 동빙고동 나루터 근처로 동빙고동 62번지에 있습니다. 당은 30여평의 부지위에 4간 정도의 맞배지붕의 당집이 있으며, 200m 가량에 神木(신목)인 은행나무 한그루가 있습니다. 이 堂(당)의 유래는 그 역사가 약 400여 년이 되었다고 하는 설이 있으며, 일설에는 구 한말 애국지사가 호국정신을 함양하기 위해 단군신을 모시는 신당을 세워 당시 주민에게 애국심을 고취시켰다고 합니다. 현재의 당은 1945년에 중수하였으며, 이때 초상화를 다시 제작하였는데 畵僧(화승)의 붓이 화폭에서 움직이지 않아 목욕 기도 후에야 붓이 움직여 현재의 초상화를 완성하였다고 합니다.
윗당은 마을의 산 꼭대기에 위치하고 아랫당은 산 중턱에 있었으나 윗당이 1950년 6 25때 훼손되고 1972년에 아랫당이 현 위치로 옮겨져 다시 지어졌습니다.본당내에 있는 현판의 내용에는 서기 1391년 경부터 있는 수호신이며 한강 연안의 방어신이며, 동민의 안정실서를 기원하는 곳으로 이 마을 17번지와 현 장소인 62번지에 건립하고 시조왕 등 영정을 모시고 매년 정월 초 1일 萬神(만신)을 불러 굿을 한다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만신은 정면에는 단군할아버지, 할머니, 구능, 마부 등이 모셔져 있습니다. 단군을 모시는 것은 시조신이기 때문이며 구능을 모시는 것은 이곳의 지형이 구능과 비슷하기 때문에 모신다고 하며, 마부는 구능님의 말을 관리한다고 합니다. 또 왼쪽벽에는 삼불제석(三佛帝釋)과 별상(別上)님이 모셔져 있으며, 반대편에는 山神(산신)님과 이초판이 모셔져 있습니다. 아랫당에는 현재 7점의 巫俗畵(무속화)가 보관되어 있습니다.

 

 
산천동 부군당 VOD보기위치보기
산천동 부군당 산천동122번지 10호에 있는 산천동 부군당은 대지 약 20평에 건평 4∼5펴 정도의 한옥기와집으로 대문 오른쪽에 신목(神木)으로 보기는 어려운 작은 나무 한 그루가 서있습니다. 제당 안에는 앞쪽에 부군님 내외분의 상이 모셔져 있고 오른쪽벽에는 세분의 제석신(帝釋神)이 모셔져 있습니다. 부군 내외상(內外像)은 앉은 모습으로 부군상은 관복을 입고 두손으로 홀을 잡고 있는 모양입니다. 삼불제석신은 연꽃 위에 앉아 있는데 한분의 제석상은 뒤에 앉아 있습니다.
앞쪽 왼쪽에 있는 제석과 뒤에 있는 제석은 왼손을 반쯤 오무려서 내영인상(來迎印相)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세 제석 모두 머리에 두광을 지니고 있으며 목에는 묵주를 걸고 있으며, 모두 회색 장삼을 입고 붉은색 바랑을 오른쪽 옆구리에 차고 있습니다. 제일(祭日)은 매년 3월 초순 길일(吉日)을 택해서 치제(致祭)합니다. 1988년 전까지는 음력 11월에 치제했으나 날씨가 춥기 때문에 3월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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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 제1부군당  ● 위 치 : 용산구 한남동 385-5
 ● 제례일 : 매년 음력 1월 1일 
 ● 당의 유래 및 제의 목적
     - 한남1부군당은 조선 인조6조(서기1628년)에 건립되었으며, 그 이후 매년 음력 정월
       초하루(원단)가 되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풍어와 풍년을 바라고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는 당제를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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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 제2부군당  ● 위 치 : 용산구 한남동 568-88
 ● 제례일 : 매년 음력 1월 1일 
 ● 당의 유래 및 제의 목적
     - 한남2부군당은 1934년에 화재로 인하여 소실되었고 현재의 건물은 이후 중건하여
       오늘에 있어 기록 보존이 되어있지 않아 정확한 시기와 유래를 알 수 없으며
       구전으로 임경업 장군을 부군으로 모시고 있음.
       매년 음력 정월초하루에 마을사람들이 모여 마을의 병을 물리치며 풍어와 풍년을
       바라고 마을의 안녕과 화합을 기원하는 마음을 담아 당제를 지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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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암동 부군당 원래는 한강가 청암동 169번지 근방에 부군당과 이성계당이 있었다.
옛날 마을에 불이 잘 나서 이를 방지하려고 지었기 때문에 화당(火堂)이라 불렀다 한다. 부군당 옆에 이성계당인 영전이 있었는데 태조 이성계가 한양천도 후 한강의 경치를 바라보며 쉬어 가던 곳이기 때문에 이씨 문중 사람들과 청암동 주민이 합심하여 지었다 한다. 1940년경 당의 앞쪽에 길을 내면서 원효로4가 178-9 번지로 사당을 이전, 신축하였으나 1950.6.25 전쟁으로 소실되어 1953년 청암동 주민들이 뜻을 모아 재건하였고, 현재는 청암동 120-2로 이전하여, 매년 음력 10월 1일 주민의 안녕과 재앙 소멸을 위해 태조 이성계를 주신(主神)으로 모시고 청암동부군당 보존회와 주민들이 모여 제례를 지내고 있다.

 

 
보광동 무후묘 VOD보기위치보기
보광동 무후묘 보광동 168번지 보광사와 함께 있으며 원래는 서낭당이었으나 제갈공명을 모시기 때문에 무후묘(武候廟)라고 부릅니다. 구조는 대지 150평의 공유지에 3칸짜리 목조 기와지붕으로 단청을 하였으며, 서낭목으로 도토리나무가 한그루 서 있습니다. 이 묘는 옛날 중국 상인이 한강으로 올라와 이곳을 지나면서 장안으로 들어 갔다고 합니다. 이곳을 지날 때 신인(神人) 제갈공명을 모시게 된 것이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신상은 중앙에 제갈공명이 모셔져 있고 오른쪽 벽에는 홍장군과 청장군이, 그리고 왼쪽 벽에는 당할머니와 산신(山神)이 모셔져 있으며 산신 뒤에는 시중을 드는 동자가 서 있습니다. 제갈공명은 붉은색 도포를 입고 앉아 붓을 들고 무엇을 쓰고 있는 모습이며 홍장군(紅將軍)과 청장군(靑將軍)은 묘를 지키는 수호신으로서 옷색깔로 홍 청장군으로 구분합니다. 당할머니는 연두색 원삼에 파랑색 치마를 입고 족두리를 썻으며 산신은 맹호(猛虎)를 옆에 않히고 붉은색 도포를 걸치고 수염을 만지고 있습니다. 이들 신상은 액자에 끼워져 있는데 그림으로 보아 근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측됩니다.
산천동 부군당 남이장군사당 이태원 부군당 보광동 무후묘 한남동 부군당 김유신장군사당 동빙고부군당